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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주님(이사야 7:10-17) 2019.1.2.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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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제일교회 작성일 19-01-03 19:45 조회 268 댓글 0
 

임마누엘의 주님(이사야 7:10-16)

 

 

이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0절, “주님께서 아하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이럴 때에 아하스는 웃시야 왕의 손자요, 요담 왕의 아들입니다. 그의 할아버지 웃시야 왕은 괜찮은 왕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5:1에서는 웃시야의 이름을 ‘아사랴’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5절, “그는 자기 아버지 아마샤가 한 모든 일을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으나, 산당만은 제거하지 않아서, 그 때까지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서 분향하였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왕은 죽을 때까지, 나병 환자가 되었고, 격리된 궁에서 살았다.”

 

이 이야기를 역대하 26:16 이하에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힘이 세지면서 교만하게 되더니, 드디어 악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분향단에다가 분향을 하려고 그리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은 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다. 아사랴 제사장이, 용감하고 힘이 센 주님의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왕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웃시야 왕을 말렸다. 제사장들이 외쳤다. ‘웃시야임금님께서는 들으십시오. 주님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일이 아닙니다. 분향하는 일은, 이 직무를 수행하도록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 곧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거룩한 곳에서 어서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왕이 범죄하였으니 주 하나님께 높임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웃시야는 성전 안 분향단 옆에서 향로를 들고 막 분향하려다가 이 말을 듣고 화를 냈다.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그를 그곳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는 날까지 별궁에 격리되어 나병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왕이 된 사람이 요담입니다. 요담 왕은 스물다섯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웃시야 왕을 본받아서 올바른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전의 북쪽 문을 만들어 세웠고, 오벨 성벽도 더 연장하였습니다. 유다의 산간지방에 성읍들을 건축하고, 산림지역에는 요새를 만들고 망대를 세웠습니다. 더욱이 암몬 자손의 왕들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요담은, 주 그의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으며 살았으므로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그렇게 열여섯 해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이 아하스입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웃시야와 아버지 요담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이 한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심지어 바알 신상들을 부어 만들기까지 하였습니다. ‘힌놈의 골짜기’에 분향을 하고,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들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는 행위였습니다. 그는 직접 산당과 언덕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물을 잡아, 이방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분향하였습니다. 그리고 역대상하 28:5, “그리하여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를 시리아 왕의 손에 넘기시니, 시리아 왕이 그를 치고, 그의 군대를 많이 사로잡아 다마스쿠스로 이끌고 갔다. 또 주님께서 그를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니, 이스라엘 왕이 그를 크게 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러자 아하스 왕은 앗사리아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이 오기는 왔으나, 그는 아하스를 돕기는커녕 도리어 아하스를 쳐서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주님의 성전과 자기의 왕궁과 대신들의 집에서 보물을 꺼내어 앗시리아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태가 그렇게 악화가 되었는데도, 아하스 왕은 주님께 더욱 범죄하였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친 다마스쿠스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섬겼습니다. 그 신이 자기가 믿는 신, 곧 하나님을 이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신을 섬기면, 그 신이 자기를 도울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전 안에 기구들을 거두어다가 부수고, 주님의 성전을 드나드는 문들을 닫아걸고, 예루살렘 이곳저곳에 제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우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여, 조상 때부터 섬겨온 주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역대하 28:27, “아하스가 그의 조상과 함께 잠드니, 그를 왕실 묘지에 장사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 안에 장사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이야기는 시리아 왕과의 전쟁 때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1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시리아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려고 올라왔지만, 도성을 정복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시리아 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가 연합하여 남왕국 유다를 치러 온 겁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을 쉽게 정복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은 그리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지형적인 이점이 있습니다. 지금도 보면, 성 밑으로 큰 골짜기가 있습니다. 정면에서 보아, 왼쪽으로 힌놈의 골짜기가 있고, 정면 아래도 빙 둘러 기드론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 뒤로는 해발 750미터 이상이 되는 산으로 둘려 있습니다. 감람산이라고 불리는 올리브 산은 성 앞에 있는데, 해발 702미터입니다. 나중에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이 북왕국 사마리아를 쳐서 삼 년 만에 멸망시켰습니다. 히스기야 왕 제4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 제14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유다로 들어와서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점령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리 만만치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앗시리아 사람들은 계속 전쟁을 부추겼지만, 히스기야는 대꾸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히스기야는 당시 예언자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자신도 성전에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9:35-37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날 밤에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서, 앗시리아 군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쳐죽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에 그들은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그 곳을 떠나, 니느웨 도성으로 돌아가서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다.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물론 산헤립이 암살되지만 돌아가자마자 된 것은 아닙니다. 돌아가서도 이십 년이 지나서야, 주전 681년경에 암살로 인해 죽었습니다. 이럴 때에 산헤립의 두 아들이 도망 친 곳이 아라랏, 아르메니아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은, 지형적으로도 견고한 성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시리아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와 함께 예루살렘을 치려고 올라왔지만, 도성을 정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리아 군대가 이미 북왕국(에브라임) 땅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왕가는 온통 공포 분위기에 빠집니다. 임금은 곧바로 성읍의 방어시설과 급수 시설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이미 앗시리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7절, “너는 너의 아들 수알야숩을 데리고 가서, 아하스를 만나거라. 그가 ‘세탁자의 밭’으로 가는 길, 윗못 물 빼는 길 끝에 서 있을 것이다. 그를 만나서, 그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일러라. 시리아의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일러라. 시리아 군대가 아하스에게 맞서, 에브라임 백성과 그들의 왕 르말리야의 아들과 함께 악한 계략을 꾸미면서 ‘올라가 유다를 쳐서 겁을 주고, 우리들에게 유리하도록 유다를 흩어지게 하며 그 곳에다가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놓자’고 한다.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계략은 성공하지 못한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적군의 두 왕을 이미 타버린 두 부지깽이에 견주셨습니다. 이런 부지깽이의 끝이 어떨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가 막힐 것 같은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두 임금은, 예루살렘에 대해서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9절,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이고, 사마리아의 머리는 고작해야 르말리야의 아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9절 하반절,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한다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를 굳게 하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지속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계획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10절,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면, 이사야는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하스 왕에 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이사야를 통해서 아하스에게 들려지는 겁니다.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다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 그랬는데, 아하스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고, 시험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6:16, “당신들이 맛사에서 시험한 것처럼,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맛사에서는 시험이라기보다 불평한 겁니다. 물이 없다고 불평한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징조하고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정말 그대로 될지를 묻는 물음입니다. 정말 그 두 나라 왕들이 그렇게 되며, 그렇게 그들이 물러가게 될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징조는 하나님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겁니다. 저 깊은 스올에서, 이곳은 죽은 사람들의 세계입니다. 저 높은 곳, 이곳은 하늘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그래도 짐작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될 것이다, 저렇게 될 것이다, 라도 말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혹은 하늘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짐작도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곳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서라도 징조를 구해보라는 겁니다.

 

옛적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극구 사양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었습니다. 다시 그 뱀을 잡으리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니, 나병이 심하게 걸려 있습니다.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니,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사시시대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힘센 장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그래서 기드온은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을 겪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기드온이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나의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니, 네가 미디안 사람들을 마치 한 사람을 쳐부수듯이 쳐부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드온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러하시다면,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놓아두겠습니다. 이슬이 이 양털 뭉치에만 내리고 다른 땅은 모두 말라 있으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저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랬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되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지팡이가 뱀이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양털 뭉치에 물이 뭐 어떻게 되는 정도도 아닙니다. 저 깊은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서나, 저 높은 하늘에서나 일어날만한 표징을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미 아하스 왕의 마음에는 앗시리아를 끌어들일 마음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앗시리아가 도와주기만 하면 저들을 이길 수 있다고 믿은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표징을 구해보라고 했는데도, 구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대신 알려주었습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처녀가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까? 이건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17절, “에브라임과 유다가 갈라진 때로부터 이제까지, 이 백성이 겪어 본 적이 없는 재난을, 주님께서는 임금님과 임금님의 백성과 임금님의 아버지 집안에 내리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앗시리아의 왕을 끌어들이실 것입니다.” 아하스 왕은, 앗시리아의 도움을 받아서 시리아와 북왕국 이스라엘 연합군을 물리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앗시리아에 의해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재난을 겪게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랬습니다. 주전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왕국 유다마저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유다는 앗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구하러 준다고 내려온 사람들이 오히려 재난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잊어버리니까, 자꾸만 세상을 의지하려 하는 겁니다.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사야서 2:22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그의 숨이 코에 달려 있으니, 수에 셈할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지금도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하면 보여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바로 이 기적 이야기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표징입니다. 구약에서는 “보여 달라”고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믿으면 됩니다. 이미 보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무슨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잖아요.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속자가 되심도 믿잖아요. 그리고 그분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심도 믿잖아요.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언제고 때가 되면,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도 믿잖아요? 그러면 무슨 징조가 필요한가요?

 

금년에 제가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성공할 거라는 징조를 보여 달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징조를 보여주실까요? 왜 안 보여 주실까요? 말씀드렸듯이, 모세나, 기드온이나, 아하스 왕이나, 그들에게 보여주신 징조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징조입니다. 무슨 자기의 하는 일이 잘 되는지, 잘 안 되는지에 대한 징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징조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복음 1:21, 천사가 요셉에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그리고 22-2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이르시기를,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하신 말씀이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서의 주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오신 겁니다. 성령께서 오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시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모세가 했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드온이 했던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했던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해를 시작하신 여러분,

임마누엘의 주님을 믿으십시오.

 

요한복음 14장, 이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으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14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일들을 보고서라도 믿어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이렇게 약속하신 분이 임마누엘 주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새해를 시작하십시오. 그래서 새해엔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성공하시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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